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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기사


관리자
최종 접속일 : 24-10-19 가입일 : 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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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기분

                                      석민재


비는 왼손잡이입니다

왼손잡이 자살하는 법, 매뉴얼을 보면서
방아쇠는 왼쪽 엄지발가락에 걸고

랄, 랄, 랄 눈 대신 비만 오는데
비 맞은 산타클로스는 어디로 갔을까

비는 흰색입니다

저기 젖은 흰색 봉투는 버려진 곰이거나
총 맞은 쓰레기봉투거나

타지 않는 쓰레기로 하얗게 분리된 내가
푹푹 썩어가는 중입니다

비는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한 병은 모자라고
두 병은 남고


-시집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파란, 2019)

【시인 소개】
석민재 / 하동군 진교면 출생. 2015년 《시와사상》,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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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다른 이름은 ‘자유’입니다. 생각의 자유가 형식의 자유로 이어진 셈이지요. 자유롭게 표현된 시를 감상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 읽기에 훈련되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시는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이 시의 주제는 뭐고, 숨겨진 의미는 뭔가 싶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시는 주제도 없고 숨겨진 의미도 없습니다. 그럼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자 이 시를 썼을까요? 제목처럼 그냥 ‘비오는 날의 기분’이지요. 왠지 자살할 듯이 우울하고, 생뚱맞게 빗속의 산타클로스가 생각이 나고, 빗줄기 저편으로 보이는 쓰레기봉투에서 마치 나도 젖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꿀꿀한 기분이 들고. 이런 날은 술 마시는 일 말고 뭘 하겠어요. “한 병은 모자라고/두 병은 남고”. 
이렇듯 현대시의 한 특징은 은유나 상징 같은 전통의 방식으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기분이나 인상, 느낌 같은 감각으로 시를 쓰는 탓에 가볍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를 캐고 주제를 따지면 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면 됩니다. 현대시는 의미에 구속당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시인도 자유롭지만 독자도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공부가 필요합니다.

김남호.jpg
(김남호 / 문학평론가)

ㅡ출처 : 하동뉴스(http://www.hadongnews.co.kr)

ㅡ원문 보러 가기 : http://www.hadon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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