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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토대로 한 평론집

 

깊고푸른고백.jpg

 

 

김남호 문학평론가의 두 번째 평론집 '깊고 푸른 고백'이 출간됐다.

난해시를 옹호했던 첫 번째 평론집 '불통으로 소통하기'를 출간한 지 8년 만에 상재하는 두 번째 평론집은 서정시를 옹호하는 데 관심과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서정시라는 장르는 ‘고백’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보고 있으며, 좋은 시는 은밀하고 고유하고 서늘한 고백이라고 갈파한다.

그의 평론도 ‘고백’이기를 희망한다.

시가 비평을 기피하고, 비평이 시를 감시하는 긴장보다 시인의 곁에서 응원하고 격려하는 ‘고백의 연대’를 꿈꾼다.

저자 김남호 평론가는 서문에서 “시가 고백이듯이 나의 평론도 고백이기를 바란다.

평론의 첫 문장이 흔들리는 고백처럼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으레 평론이란 논문처럼 딱딱한 글이라서 읽기 힘들다고 여기는 세간의 편견을 깨뜨리며, 그의 평론은 에세이처럼 자유롭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힌다.

문학작품의 해석에 머무는 ‘문학평론’이 아니라 평론 스스로도 문학이 되는 ‘평론문학’이라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327페이지 분량에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시는 고백의 문학이다”, 2부는 “깊고 푸른 고백들”, 3부는 “고백의 다양한 양상”, 4부는 “지역 시인들의 당찬 고백” 순이다. 특히 4부에서는 지역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으로 꾸며졌다.

현재 박경리-이병주 통합 문학관장으로 있는 김남호 평론가는 하동군 양보면 출생으로 2002년 계간 '현대시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고, 2005년 계간 '시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링 위의 돼지', '고래의 편두통', '두근거리는 북쪽'을, 디카 시집으로는 '고단한 잠'을, 평론집으로는 '불통으로 소통하기'(2014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선정)를 펴냈다.

그는 제1회 형평지역문학상, 제8회 디카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예총 하동지회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했으며 책값은 2만 원이다. 강정배 기자 kjb3454@hanmail.net

ㅡ출처 : 하동뉴스(http://www.hadon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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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은밀하고 서늘한 고백이듯 나의 평론도 '깊고 푸른 고백'이기를

 

진부한 주장이지만, 시는 고백이다. 좋은 시는 은밀하고 고유하고 서늘한 고백이다. 고백과 비슷하지만 짝퉁인 것들, 이를테면 독백이나 방백, 푸념이나 엄살들과는 다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데는 어설픈 이론보다는 훈련된 감각이 효과적이다. 눈 밝은 독자들은 짜릿한 전율로 알아챈다. 좋은 고백은 전압이 높다는 걸. ㄱ,간 을;기 학창시절 연애편지 주고받을 때부터 깨닫지 않았는가. 첫 줄부터 심장을 찌릿하게 조여오던 그 순도 높은 고백들을.

돌이켜보면 나를 매료시킨 시들은 대개 '깊고  푸른 고백'이었다. 말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서 대밭에 구덩이라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야 했던 복두쟁이의 절규 정도면 더욱 좋겠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지만 본인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말들. 지옥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지옥에 안착하는 말들. 그런 고백이면 황홀하겠다.

시가 고백이듯이 나의 평론도 고백이기를 바란다. 부글거리는 속을 못 견디고 속엣것을 모조리 게워내는 골목길 가로등 아래 취객처럼, 솟구쳐오르는 속엣것뿐만아니라 내장까지 심장까지 심지어 전생까지 토하는 시인들. 그들의 고통스러운 고해성사 옆에서 등이라도 두드려주는, 함께 헛구역질이라도 해주는, 뜨거운 '고백의 연대'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바라건대 나의 평론에서는 아름답고 세련된 문체의 아취(雅趣)가 아니라 후회와 각오로범벅이 된 시인들의 토사물로 악취가 진동했으면 좋겠다. 그 악취 속에서 내 평론의 첫 문장이 흔들리는 고백처럼 찾아왔으면 좋겠다.

 

ㅡ『책을 펴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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